2011/12/21 00:20

111220_김정일 사망과 조문 Diary

아무리 옳지않은 3대세습 독재정권이라 해도, 국가 차원의 조문까지 못할 이유는 없을텐데. 가냘픈 지지기반인 보수층을 강하게 의식해서 등떠밀린게아니라면. 만약 그렇다면 정치와 외교에 있어 행정부는 눈치보는 본능 외에 그 어떤 기술이나 전략도 불필요한걸까...조문은 화해 제스쳐도 아니요,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한 용서의 의미도 아닌데. 서로 삐져서 말도 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한 교실에서 수업받는 초등학생들의 심리를 연상케 한다.
혹은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동을 선택한건가. 가스통 들고 날뛰는 수구세력이나 조금 더 세련된 보수세력이나 김정은이나 당분간 그 어떤 변화도 원치않을 것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문제없어서가 아니라, 변화를 시도하기엔 움켜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이유에서건, 그리 전략적인 결론같아 보이진 않는다. 안타깝게도.

한가지 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일 뿐인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국방위원장이라 부르는게 뭐가 잘못됐나.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있어도 애써 없는듯, 괴뢰정권 정도로 취급하던 시절의 발상 아닌가.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는건 현실이 반영되지 못한, 역시 초등학생 정도의 이분법적 발상을 연상케 한다...눈에 보여도 애써 인사도 안하고 무시하며 지나치는, 그러면 상대의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발상.

외교적으로, 좀 덜 찌질해졌으면 좋겠다. 힘없는 나라니 눈치보고 기웃거리는건 어쩔 수 없다 쳐도.
문득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한양까지 왜군이 처들어와 피난이 임박한 시점에, 동인과 서인이 선조 앞에서 피난갈 목적지를 두고 또 설전을 벌인다. 피곤한 아니 짜증난 표정의 선조가 책상을 뒤엎으며 소리친다. "도망칠 곳 정하는 것도 제대로 못해서 싸우고 지랄이야..."뭐 대충 이런 뉘앙스.
그만 싸우고, 대화할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조문하는게 맞다고 본다. 지켜보는 사람 피곤하다. 아니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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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6 04:19

111205_생각 Diary

모든 생각은 문자의 정교한 조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내 생각의 범위는 내가 알고 있는 문자의 범위이고, 생각은 그 문자의 조합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나의 생각을 넓히기 위해서는 많은 문자를 알고, 그것을 조합하는 방법을 익혀야만 한다.

-박경철, '자기혁명' 

*
영어로 생각을 하려 애쓰다보면 어쩌다가 한국어의 바다를 버리고 이리 좁은 방안에 갖히게 되었을까 싶을 때가 많았다. 영어로 표현되거나 생각되지 못하는 지식들은 그저 하드디스크안에 가득찬 쓸데없는 0과 1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어로 하는 생각의 범위를 놓고 보면 영국의 초등학생과 비교해 과연 크게 다를까 싶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영어능력이 단박에 늘거란 기대는 이미 포기했다. 겉보기에 나와 그리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동양계 교수들은 수십 년 동안 영어로 생각을 해왔기에 오히려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는게 신기할 때도 있다...

그런 점에서, 박경철씨 지적은 정확히 들어맞는다. 언어가 관념을 구속하기도 하겠지만, 관념이란게 애시당초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것 아니겠는가. 벽이 공간을 구속한다고 벽없이 집을 세울순 없는 것과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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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23:03

110523_해봐도 별로... Diary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일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그렇단다...
킁.
인생이 공허한 것을, 천성이 그런 것을, 직장 때려친다고, 연애한다고 달라질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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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2 21:26

110402_1st Quarter End. Diary

2011년 1사분기 결산.

주위에 몹쓸 짓들을 꽤 했다. 특히나 3월 한 달 간.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을 뿐이지 내가 저질러놓은 것들을 보며, 과연 내가 이러는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기도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한 걸 보니 나도 아직 나이브하다.
몸이 자주 아팠다. 묵직한 두려움도 종종 느꼈는데, 20대에 느끼던 안절부절 못하던 긴장감이나 날카롭게 다가오던 무서움과는 다르다. 이렇게 서서히 소멸해 가는구나 싶은 피할 길 없는 묵직함.

피곤하고 또 피곤하다.
훗날 이렇게 회상할 수도 있겠다. 짧았던 직장 생활의 끝에 느꼈던 자포자기한 심정에 깔려 헉헉댔던 시기.

*
독특한 경험 하나.
동기 결혼식엘 갔다가 한 후배와 제수씨, 그리고 아들을 만났다. 제수씨가 갓난아기를 얼르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야지" 했다. 내가 소스라치게 놀랐던 건, 머지않아 그런 말을 후배의 아들로부터 듣는 날이 분명히 온다는 필연성을 깨닫고였다. 그때 난 어떤 모습으로 인사를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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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5 00:02

110314_장밋빛미래 Diary

1. 
방을 비우기로 마음먹은 이후, 내 방이 점점 히피 소굴처럼 돼가고 있다...
점잖은 표현이 그런거고, 쓰레기장이 맞다.

2. 
대학 2학년 여름방학에 호주엘 갔었다. 약 한달간.
거기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최소 3번 읽었고(주로 그레이하운드 또는 맥카퍼티스 버스 안에서), 이승환 5집은 20번은 들은 것같다.
5집은 요즘 이승환 노래보다 좀 덜 세련됐을진 몰라도 색깔이 있는 앨범이었다. 색깔이 중요한 이유는 앨범 하나가 한 달 간의 여행의 무드를 결정해 주었기 때문일거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난 지금도 그의 노래 중에서 '붉은낙타'를 제일 좋아한다. 그 노래 중 한 구절을 대학 생활 내내 읊조렸다. "장밋빛미래 저만치서 처절하도록 향기로운 냄새로 날 오라하네..."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 구절이 떠오를 때마다 난 그 선택을 배제했다.
그래서 지금 이모양이다.

3. 
오늘 팀장이 상당히 솔깃한 카드를 꺼내 들고 나에게 '이리 오라' 했다. 
그냥 그렇게 안락한 삶을 꿈꾸는게 아니면 큰 기회를 갖게 될거라고, 어찌보면 입바른 소리를 했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15년 정도 뼈빠지게 일하고 나서, 운이 좋다면 모두가 슬슬 정년퇴직을 걱정할 즈음에 나는 줄을 영 잘못 서지 않는 이상 훨씬 큰 비지니스를 할 수 있을 거라 했다.
해외에서의 경험과 그 이후에 있을, 개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힘과 영향력.
팀장이 괜히 팀장이 아니었다. 그는 나에 대해 아주 잘 꿰뚫고 있었다. 나태하고 공상을 즐기는 습성을.

4.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것도 그런 꿈 때문이었다. 상대적이겠지만 남들보다 적은 연봉과 반대로 (나에게 있어)큰 성장가능성.
2년이 지난 지금 난, 모두 불타 버린 느낌이다. 그런 의지를 기억한다기보단, 그런 기억이 있었다는걸 기억하는, 정말 꿈을 꾸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다. 더 이상 달리기에 너무나 지쳐 의욕도 없고 동기부여도 없다. 내가 뛸 수 있는 그 어떤 연료도 남아있지 않은 것같지만 요즘도 보통 제일 늦게까지 퇴근하지 않고 있다. 
이 생활을 계속한다면...이렇게 지내다 적당히 30대 중반에 결혼하고 아들딸 낳아 키우다가 해외로 보내고 정년퇴직 걱정없는 노후를 위해 토요일 일요일을 헌납하겠지. 자기 수집품을 자식보다 중요시하는, 시니컬하고 음침한 아버지라고 무시당하다가 적당히 골라잡은 암에 걸려 환갑도 맞기 전에 쓸쓸히 사라지겠지.

5.
퇴사에 관해서는 내가 지금껏 상담해 온 모든 윗사람들이 아쉬워했다. 남아있는 인생 중 가장 활기차고 젊은 2년을 바친 나로서는,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피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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